이번에 읽은 책은, 이치조 마사키의 일본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다. 속편의 소설 발매는 물론이고 영화화까지 될 정도로 유명한,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상당히 흥행한 단편 소설이다.
이것만큼은 어떻게 독후감을 써야 할 지 모르겠다. 간만에 읽은 소설이다. 소설에 대한 독후감은 어떻게 써야 할까. 그것도 이렇게 내용에 아예 반전요소가 여럿 있는 소설은.
그러니 책을 안 읽은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만큼 좋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벼운 글을 읽고, 이 무거운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여느 독후감처럼 책이 어디가 좋았는지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저 이 소설은 나에게 어떤 생각 거리보다도, 그냥 '느낄 거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간만에 강렬한 슬픔과 괴로움, 애틋함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다. 농담으로 '안구건조증이 치료될 정도'였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여기에 적는 '독후감상문'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거나 설명하는 것보다도, 그저 이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생각과 이야기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소설을 정말 싫어한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저 내가 그 소설 속 상황과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드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은 나에게 다른 의미보다도 다분히 '감정적'인 경험으로서만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과 여기에 적는 내용도, 책의 맥락 같은 것보다도 그 감정이 주가 될 수도 있다. 그걸 내가 글로 풀어쓸 수 있는지 역시 미지수긴 하지만.
풋풋한 사랑은 가볍지 않았다
간만에 읽은 사랑 이야기이다. 가미야와 히노, 그들은 거짓으로, 단순한 흥미 또는 스스로도 모른 전개로, 가벼운 가짜 연애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분명 풋풋한 남녀가, 그저 서로 같이 다니기만 해도 생기기 쉬운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 감정은 사랑이지만 사랑이라기엔 미숙하고 풋풋하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두 사람은 서로의 어두운 면, 슬픈 면을 알아갔고, 그 과정에서 생긴 애틋함이 그 사랑을 키웠다. 이 풋풋한 사랑은 절대 무겁지 않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같이 지내지만,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말하자면 흔한 클리셰이다. 하지만 일단 그 클리셰만의 감성과 '맛'이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짝사랑으로만의 마음을 가지지만, 그 짝사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확신과 안정감을 독자에게 주니까. 나도 그 안정감을 기분 좋게 즐겼다.
하지만 그 사랑은 애틋함과 함께 깊어졌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거기서 오는 안정감, 편안함. 이런 느낌을 그 둘은 신선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현은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 생각한다.
이들 사이는 정말 트러블 하나 없는, 그저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투명한 마음의 형태를 아주 좋아해서,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그 투명한 마음을 다른 색으로 물들였다. 새롭게 다듬었다. 아니, 상처입혔다. 그리고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가가 보고 싶었던 것
분명 내용은 꽤 다양하다. 가미야의 친구 시모카와와 그를 괴롭히던 친구, 둘 다 이후 가미야의 영향으로 번듯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가미야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짐과 꿈, 그리고 가미야의 누나와의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그것이 가미야의 노력으로 해소되는 이야기. 관찰자 시점의 와타야가 가지고 있던 감정. 모두 의미가 크지만, 나는 더 중요해보이는 단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운동선수의 이야기에는 운동선수가 들어간다. 모든 과학자의 이야기에는 과학자가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자신을 비슷한 대상에게 투영하곤 한다. 이번에 작가는 자신을 '신인 작가'인 가미야의 누나에게 투영해서,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낸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이 소설의 가장 큰 비극 뒤에 보인다.
선행성 기억상실증, 매일의 기억을 기록하는 노트, 그리고 풋풋한 사랑. 그 사랑의 '기억'을 담은 '기록'을 '작가'가 바꾼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바로 이 참신한 상황을 상상하며, '작가'라는 일의 의미를 고민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작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그냥 바뀔 수도 있다. 그것을 기억으로 믿는다면, 사람 자체가 변할 것이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럼,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가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말 그대로 히노는 가미야를 '기억'하고 있다. 히노의 기억상실증에도 가미야는 남을 것이다. 기억상실증이라 해도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작가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식의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나름의 논리로 이를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내용에는 그런 힌트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전날의 감정이 다음날로 전해져, 매일매일이 비슷하지만 다른 상태가 되는 것. 생명과학부에 재학 중인 나에게는 이런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이건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신경전달물질이나 특히 호르몬 종류의 경우, 물질이 전부 분해되지 않는다면 감정은 전달될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약을 먹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나아져 어색해지는 것처럼, 히노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사랑이나 상실 같은 감정이 남아있을 수 있다. 물론 쉽게 분해되는 신호분자의 특성 상 오래 남아있지는 못하겠지만.
두 번째로, 작가가 강조한 것은 바로 '작업 기억'은 서술 기억과 다르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작업 기억'이 '감'에 의존하는 기억인 만큼, '감'에 의존하여 생기는 '사랑'도 비슷한 방식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논한다. 실제로는 그럴 수 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애틋한 이야기의 느낌이 난다.
실제로 작업 기억은 서술 기억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사례들이 많다. 아마 그 이유는 기억을 저장하는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짧은 뇌과학 지식으로 이를 해석하자면, 서술 기억은 해마와 변연계에서 장기 기억으로 처리되지만, 작업 기억은 주로 소뇌 쪽에 저장된다. 그래서 해마 쪽에 문제가 생겨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생겨도 작업 기억은 남는다.
물론 작업 기억에 사랑이 포함될까? 나는 이 의견 자체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반면 내가 조금 더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는 상황, 더 마음이 가는 상황은, 바로 후각에 관련된 이야기다.
실제로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기관인 해마는 감정을 다루는 변연계와 후각을 담당하는 후각망울, 이렇게 두 기관과 신경 자체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후각에 의해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그때의 감정까지 함께 말이다.
나도 건조하고 달콤한 가을의 향기를 좋아하는데, 그 향기를 맡으면 내 감정이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의 기억과 느낌이 다시 떠오르곤 한다. 작중에서도 히노는 홍차의 향기에 가미야를 조금 떠올렸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제목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모순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독자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그 둘의 사랑이 사라질까 걱정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너무도 허무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그 작은 가능성을 믿을 때 생기는 애틋함이 바로 이 작품의 맛이 아닐까 싶다.
사랑 이야기를 넣은 이 작품의 '맛', 짝사랑의 신맛이 조금 들어간 달달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맛이 쓰다. 마치 가미야가 좋아하던 레이디그레이 홍차의 향 같다. 그래, 나는 그 홍차의 향을 믿는다.
가까운 어느 날, 히노는 우연히 홍차를 주문하고 레이디그레이를 카페에서 받는다. 정확히 같은 차를. 그리고 그 향기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된다. 잔이 깨지고, 히노의 기억 속 가미야는 깨어난다. 그 아름다운 애틋함을 우리는 믿는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히노와 가미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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