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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Note/Biology

까마중의 적정 춘화처리 방법 연구노트 #번외

이전 까마중 종자의 적정 춘화처리 연구는 불완전하게 끝났다. 전체적인 종자의 발아율이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일단 첫 번째. 실험 자체가 빛이 잘 들지 않고 온도도 낮은 자취방에서 겨울에 진행되다 보니, 종자 자체가 발아하기 좋은 기온 등 환경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벌초 전에 종자를 급하게 채취했다. 종자와 열매 자체가 잘 익지 않았기 때문에, 발아 자체가 별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필자는 실험 후 남은 종자를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실험 종료시까지 발아 테스트를 하지 않고 계속 Stratification 상태였던 종자, 그리고 Stratification 0~4주차에서 발아 테스트 후에도 발아하지 않은 종자들을 각각 모아 보관해두었다.

다만 Scarification 차이, Stratification 기간 차이는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Scarification이 큰 의미를 주지 않을 거라는 작은 결과를 이미 얻었고, 위의 두 가설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보관의 어려움에 비해 실익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그렇게 해놓았으니... 지금의 나는 그걸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근 식물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식물 배양실로의 접근 권한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위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배양실은 하루 16 시간 광조건/8 시간 암조건을 반복하는 LD(Long day), 21~25 °C 사이의 온도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배양실의 습도 역시 높았지만, 종자 발아 실험은 물이 묻은 휴지 위에서 진행하므로, 큰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종이컵과 휴지가 아닌, 연구실에 있는 페트리 접시와 페이퍼타올을 이용하였다. 그 위에 종자들을 적당량 흩어두고, 페트리접시를 덮고 배양실에 두었다. 이후 3일, 일주일 후에 발아 결과를 확인하였다.

보관되어있던 종자의 형태. 왼쪽은 tested(발아 테스트에서 발아되지 않아 보관), 오른쪽은 fresh(발아 테스트를 아직 진행하지 않음) 종자이다.
실험 환경. 일반 페트리 접시를 이용하여, 물에 적신 페이퍼타올 위에 까마중(Solanum nigrum) 종자를 적당히 흩뿌려두었다.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생겼다. 종자는 항상 종자 봉투에 보관해야 한다.
실험 진행 전에 확인된 사고가 있다. 종자는 위 사진과 같이 ep-tube에 보관되었는데, 냉장보관된 tested 종자들과 달리, fresh 종자는 상온에 보관 중이었다.
진짜 문제는 ep-tube가 통기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종자의 습기를 100% 제거하지도 않았고, 사실상 그럴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상온에 있던 fresh 종자는 그 안에서 부패, 아니 더 나아가 발효를 일으켰다. ep-tube를 열자마자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필자는 바이오에탄올을 만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향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실험 결과에서 아주 잘 나타났다.

실험 3일차. 왼쪽부터 tested, fresh(발효된) 종자들.
실험 3일차, tested 종자들. 기존 실험 기준으로는 발아했다고 취급한, 뿌리가 밖으로 나온 종자가 많이 보인다.
실험 3일차, fresh(발효된) 종자들. 정말 단 하나도 발아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존에는 잘 발아한다고 확인했던, '색이 진하고 알이 큰 종자'마저 발아하지 않았다.

발아 조건 3일 후 종자들을 확인해 본 결과는 위 사진과 같다. tested 종자들은 조금씩 발아를 보였고, 심지어 그 비율도 기존 실험(5일~일주일 진행 후)보다 높았다.
단, 발효가 일어난 fresh 종자들은 하나도 발아하지 않았다. 아마 발효 및 부패에 의해, 안쪽의 발생 기관이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기존 실험과의 차이는 발아 조건 일주일 후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험 7일차. 왼쪽부터 tested, fresh(발효된) 종자들.
실험 7일차, tested 종자들. 기존 실험 기준으로 적어도 60% 이상의 종자가 발아했다. 심지어는 아예 떡잎을 펼치고 위를 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종자 주변 색상은 식물 자체의 안토시아닌계 색소 외에도, 곰팡이 등 때문으로 확인된다.
실험 7일차, fresh(발효된) 종자들. 아직까지도 전혀 발아를 보이지 않았다. 발효 및 부패의 영향으로 보인다.

발아 조건 7일 후 종자들을 확인한 결과는 위 사진과 같다. Tested 종자의 60% 가량이 이전 실험 조건이 아닌 이번 실험 조건에서만 발아한 것을 보아, 실제로 이전 실험 조건이 종자 발아 유도에 적절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Fresh 종자의 발아율과 비교해봤을 때, 적절한 종자 보관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가능하면 통기성이 좋은 종자 봉투 등에 보관하거나, 밀폐된 용기라면 아예 냉장고 등 저온의 환경에 보관하면 된다(얼리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또한 종자가 완숙될 수록 더 낮은 온도, 더 어려운 환경에서의 발아율이 높아진다는 사실 역시 이전 실험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기존의 까마중 종자 채집 방법은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보관 중인 종자들의 발아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로 상당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늘 목표하던 까마중 실내 재배, 인조 재배 역시 큰 어려움 없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종자 주변에 곰팡이가 핀 것은 단순히 빛과 양분(종자 껍질 등)이 가득한, 습하고 따뜻한 공간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종자 발아의 성공 여부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식물도 면역이란 게 있다는 것, 당연하지만 늘 놀라운 사실이다).
더 이상 실험을 지속할 필요는 없으므로, 7일차에 모든 실험 기구를 폐기하였다. 남은 까마중 종자의 수도 많기 때문에, 모두 일단 종자 봉투에 보관하였다.

추후 재배에 들어가면 다시 블로그에 올리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군입대를 하게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아예 군부대에서 재배를 시도할 수도 있다.

이렇게 '까마중의 적정 춘화처리 방법 연구노트'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