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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독서] 무소유 - 법정

무소유 - 법정

2019.05.11 ~ 2019.05.29

이 글은 필자가 2019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성한 글로, 글의 진행이 서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실제 경험과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뢰하셔도 좋습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스님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 얻은 교훈 등을 때때로 적은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내용들보다 스님의 삶에 대한 내용이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스님의 삶의 3가지 특징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스님의 글과 스님의 삶 곳곳에서 보이는 스님의 이타적인,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행동과 마음가짐이다. 작중에서 법정 스님이 옛 친구 수연 스님을 만났던 일이 있는데, 이때 둘이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수연 스님이 버스 창가에 거의 빠져가는 나사를 가지고 있던 주머니칼로 다시 끼워주었고, 법정 스님이 그걸 보고 수연 스님의 착한 심성에 감동하는 일을 적은 부분이 있다. 이외에도 법정 스님이 아프셨을 때 왕복 80리를 걸어 동냥을 하고 약을 사왔던 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스님들은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어릴 때의 어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일 이후로 나도 남에게 베푸는 착한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중학교 도덕 시간의 기억에 따르면 어릴 때는 그냥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을 하고, 좀 더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위해 행동을 한다고 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최소한 남을 괴롭히지는 않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최소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에게 피해만은 되지 말자, 이것이 나의 가치관이다.

 꼭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그래서 남에게 한 번도 피해를 주지 않았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가끔 남에게 실수로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상당히 힘들어지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실수로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인간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서로 각자의 가치관, 즉 일종의 색안경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글을 쓰기도 하셨다.

 두 번째로, 제목에서도 보이는 스님의 무소유의 삶이다. 스님에게는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은 그저 지나갈 뿐이고, 잠깐 동안 자신의 곁에 있다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물건과도 인연을 중시한다. 법정 스님도 물건을 도둑맞았을 때 이 때문에 전혀 아쉽지 않다고 표현하였다. 더 크게 보면 가지고 있는 신체도 그저 잠깐 가지고 있는 몸이며, 죽으면 영혼과 이별하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스님들은 돈이나 쌀을 탐내지 않고, 비싼 사치품을 탐내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절 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에도 큰 스님은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난초를 애지중지 기르다가, 난초에 대한 집착이 무서워져 그것을 다른 친구에게 넘겨주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스님의 특징은 삶에서 금전적인 고민, 집착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적인 고민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갑부도 누리기 힘든 큰 행복이다. 취직은 물론이고, 돈 때문에 얻는 고통과 불안이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스님의 삶이 사실 굉장히 부러웠다. 지금의 내 삶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나오는 성적이 들어갈 대학교의 이름을 결정하고, 들어갈 대학교의 이름이 이후의 나의 전반적인 경제적 능력을 결정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미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 치이며 살고 있고, 심지어는 벌써부터 금전적인 걱정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무소유를 실천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좀 더 진지하고, 깊게 해보았을 때 깨달았다. 만약 내가 이렇게 스님과 같이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나는 금전적인 욕구는 아직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부분은 괜찮다고 해도, 아마 내가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고통, 실망감 등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혹은 주변 인물들에게 금전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스님들도 금전적인 욕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금전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욕구를 버리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불경의 구절을 외고, 그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이런 일 때문인지, 법정 스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이다.” 그만큼 스님으로 사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가족들이 대부분 기독교를 믿지만,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불교가 더욱 마음에 든다. 한 번 쯤 불교를 직접 접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스님과 같은 수련을 한다면 물질적인 욕구를 버릴 수 있을까,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금전적인, 혹은 다른 여러 가지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 스님에게 내 삶에 대한 조언을 여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로, 위의 이유 때문인지 스님은 굉장히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법정 스님처럼 뭔가를 도둑맞아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시계를 도둑맞아 다시 다른 시계를 사러 갔더니, 자신이 쓰던 시계를 가진 도둑을 만나서 다시 천 원 주고 사기까지 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뭔가를 아쉬워하지 않고, 뭔가에 잘 실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그렇게 긍정적이게 살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웬만하면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하고, 최대한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그 노력이 효과가 있어 삶을 사는 것이 꽤 즐거워졌기 때문에, 스님의 행동이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신기한 것은, 작중에서 법정 스님이 도심의 문명에 대해 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법정 스님이 눈이 아파서 안과를 여기저기 갔다가 고쳐지기는커녕 큰 수술비까지 들어버렸는데, 한의원을 가서 약을 한 번 처방받으니 바로 쉽게 나아졌지만, 그 수술 때문인지 눈이 영구적으로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서양식 의학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는 아파트나 도심의 좁은 삶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나 그럴 때 나오는 대중음악에 대해 좋지 않게 표현한다던지, 절에 그냥 흔한 다른 책을 사온다고 해서 출가가 안 된다는 이유로 책을 불태운다던지, 다양한 현대의 문화들을 작중에서는 별로 좋지 않게 표현하였고, 나는 솔직히 그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것 정도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개인의 취향의 차이 때문에 좋지 않게 표현한 것은 아닐 것 같다.

 이 외에도 법정 스님은 이 책에 많은 글을 쓰셨다. ‘어린 왕자라는 책을 좋아하셔서 그 책에 대한 내용을 많이 쓰시기도 하셨고, ‘종교는 나무와 같이 가지를 보면 많지만 그 뿌리는 하나에 있다며 종교와 종교 갈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길게 쓰시기도 하였다. 가을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는 스님의 작은 생각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짧은 길이의 글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글들의 내용이 다 다르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읽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 글이 몇 가지 있다. 조약돌의 모를 깎아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못과 망치가 아니라 부드러운 바닷물이라며, 부드러운 자비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글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할까? 왜 누구 한 사람을 두고 비하하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범죄자는 벌이 무서워야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것과는 모순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문제이지만, 나는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자비를 찾아볼 수 없다. 나라도 자비를 베풀자며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딱 한 명 더 자비를 베푼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법정 스님이 여러 수행을 하며 얻으셨을 깊은 깨달음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깨달음보다는 나의 삶과 사고방식 등을 스님의 것과 비교하며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 준 이 책을 읽어서 기쁘다. 월요일마다 읽을 책을 고를 때 나는 고르는 책마다 거부당하고 나서 급하게 학교 추천도서를 찾아 이 책을 고르게 되었고, 지금 이 책을 마무리하며 독후감을 쓰면서 이렇게 이 책과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이어졌던 것만 같아 신기하다. 심지어는 마무리가 아쉽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친구들도 이 책을 한 번 씩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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