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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Science

[에세이] 찬드라세카르, 비운의 노벨상 수상자

[제 13회 노벨과학에세이대회, 수상 : 없음]

2019.08.25

이 글은 필자가 2019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성한 글로, 글의 진행이 서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실제 경험과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뢰하셔도 좋습니다.

 

이번에 내가 과학글쓰기에 쓸 노벨상 수상자는 찬드라세카르 한계를 알아낸 공로로 198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이다.

일단, 과학을 조금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이 이름은 조금 익숙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1999년에 발사된 찬드라 X-선 망원경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인데, 이 이름은 찬드라세카르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그는 얼마나 엄청난 발견을 했기에 노벨상마저 탔을까? 그의 일생을 보며 그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도인이다. 영국령 인도 제국의 펀자브 주 라호르에서 1910년에 탄생하였으며, 아버지는 고급 철도청 관리였지만, 그의 삼촌은 193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였다. 이후 그는 12살에 첸나이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1925첸나이 힌두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다음 그는 1928년 첸나이 프레지던시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1930년 학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때 전 세계의 천문학계는 아서 에딩턴이라는 물리학자가 중심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딩턴은 천문학계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 전적이 많았다. 이전에 에딩턴은 별의 붕괴를 막아 동역학적 평형에 이르게 하는 요인이 별 내부의 복사 압력’(열에 의해 생기는 기체의 압력)이라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별 내부의 모든 점에 대해 온도, 압력, 밀도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게다가, 그는 별들의 질량-광도 관계를 발견하고, 이 역시 이전의 계산 결과와 모두 맞아떨어짐을 보였다. 심지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일식을 이용하여 증명해낸 천문학자도 에딩턴이었다. 이렇게 에딩턴은 엄청난 양의 발견을 해냈고, 정말 엄청난 양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쯤에 시리우스 쌍성계의 백색왜성인 시리우스 B의 밀도를 계산해보았을 때, 1cm³61,000g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물론 그 당시의 계산은 값들이 잘못 측정되어있었으며, 실제 밀도는 4,000,000g/cm³이다). 이외에도 발견되었던 두 개의 백색왜성의 밀도도 시리우스 B처럼 정말 높았다. 에딩턴 역시 이 부분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위에서처럼 별의 동역학적 평형은 복사 압력때문이라고 주장했듯이, 에딩턴은 백색왜성도 복사 압력에 의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사 압력을 가지려면 백색왜성도 온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열을 복사를 통해 점차 잃을 것이며, 결국 복사 압력이 약해지고 백색왜성이 압축되며 내부의 온도가 더 올라가 평형을 이룰 것이다. 대신 백색왜성의 열이 계속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만큼 백색왜성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은 언젠가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에딩턴은 블랙홀이란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실제로 백색왜성의 최후는 블랙홀이 아닌 것이 맞지만, 그는 아예 부피가 무한히 작지만 질량만이 존재하는 물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그러하였다.) 분명 백색왜성이 복사를 통해 열을 잃어 차갑게 식은 후에는 다른 종류의 압력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는 위의 모든 역설의 내용을 자신이 쓴 <항성의 내부 구성>이라는 책에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넣어두었다.

하지만, 이때는 양자역학이 한창 활발하게 연구되던 시기였다. 그 시기, 랄프 파울러라는 물리학자는 1926년 작성한 <고밀도물질에 대해서>라는 논문에서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알아낸 전자의 축퇴운동에 의해 생기는 전자 축퇴압이 에딩턴이 생각한 다른 종류의 압력임을 보였다. 일단 백색왜성이 중력을 이겨내는 압력은 축퇴압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압력을 만들기 위해 온도가 높을 필요가 없으며, 백색왜성이 식어갈 때도 축퇴압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찬드라세카르가 첸나이 프레지던시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도서관에서 이런 내용들을 읽게 되었다. 찬드라세카르는 이것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관련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20세기의 물리학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두 가지 발견,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에 푹 빠져버려서 양자역학과 관련된 천문학을 더욱 탐구하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파울러에게 보냈고, 파울러는 만나 본 적도 없는 한 청년의 논문을 출판되도록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1930년에 파울러는 이렇게 인도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에딩턴과 파울러가 있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의 대학원 연구를 허락받아 영국으로 가는 배에 탑승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는 무려 17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동안 찬드라세카르는 정말 할 일이 없이 무료했다. 또한 파울러가 주장한 해결책인 축퇴압은 틀린 것이 없어보였지만, 파울러는 백색왜성 내부의 축퇴압중력사이의 균형, 그리고 그에 따른 내부의 압력, 밀도, 중력 등의 구조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를 생각해내고는 지루함을 떨쳐내기 위해 백색왜성의 내부구조를 계산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에딩턴의 책, <항성의 내부 구조>를 참고하여 시리우스 B의 구조를 알아냈으며, 이를 통해 계산한 시리우스 B의 중심부에서의 전자 축퇴 운동 속도가 무려 광속의 57%임을 알아내었다. 시리우스 B보다 더 큰 백색왜성은 전자 축퇴 운동 속도가 더 높을 것이며, 이 정도의 속도를 가진 입자라면 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이 계산에 상대론의 효과를 추가하였다. 물론 갓 석사 과정을 끝낸 찬드라세카르에게 상대론을 넣어 계산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전자가 광속에 가까워질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주어지면 전자의 질량(관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이용하여 백색왜성의 내부 구조를 추론해내었는데, 놀랍게도 고밀도인 백색왜성은 축퇴압이 중력에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한계를 알아보니, ‘질량이 태양의 1.4배보다 작은 경우에만 축퇴압으로 중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었고, 이 한계가 바로 찬드라세카르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인 찬드라세카르 한계이다! 무려 그는 인도에서 영국으로 항해하는 17일 안에 알아낸 식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일단 찬드라세카르는 배에서 바로 두 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하나는 백색왜성의 내부구조에 대한 계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양 질량의 1.4배 이상의 백색왜성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가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는 파울러는 다른 나라에 있었고, 파울러가 귀국하자마자 찬드라세카르는 그에게 두 논문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논문은 파울러가 바로 출판을 승인해주었지만, 파울러는 두 번째 논문의 백색왜성 질량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동료에게 논문 검토를 맡겼고, 그 동료도 이해하지 못하자 파울러는 두 번째 논문의 출판을 승인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논문을 출판해주지 않자 찬드라세카르는 영국에서의 출판을 포기하고 그 논문을 미국에 보내어 출판을 요청하였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칼 에카르트가 이 논문을 심사했고, 찬드라세카르가 여러 번의 수학적 증명을 보내고 나서야 논문 작성 후 1년이 지나고 출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박사과정을 마쳐야 했던 찬드라세카르는 학계가 받아들여줄만한 다른 연구를 진행했고, 1933년 결국 박사 학위 취득에 성공하였다.

이후 소련에서 만난 천체물리학자인 빅토르 아마자스포히치 암바르추미안의 충고에 따라 현존하는 백색왜성들의 질량이 모두 찬드라세카르 한계보다 작음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찬드라세카르가 연구에 집중하던 중, 1934년에 백색왜성 물질에 대한 상태방정식을 에드먼드 스토너와 빌헬름 앤더슨이 계산하여 발표하였다. 찬드라세카르는 이 상태방정식을 이용하여 발견된 10여 개의 백색왜성의 질량을 모두 구하기 위해 각각에 대한 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했다. 하지만, 계산은 너무 복잡했고, 결국 에딩턴의 도움으로 에딩턴이 가지고 있던 계산기를 빌려 계산해내었다(1934년 당시의 계산기는 매우 비싼데다 흔치 않았고, 해봐야 곱셈 정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방에 자주 들려 그를 격려해주었을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계산 결과가 모두 나왔고, 예상대로 모두 태양 질량의 1.4배를 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왕립 천문학회에서 발표할 기회마저 주어졌다. 하지만 같은 천문학회에서 에딩턴은 상대론적 축퇴’, 즉 찬드라세카르와 같은 주제인데다 바로 다음 순서로 발표하며, 그가 한 지인을 통해 천문학회의 프로그램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에딩턴 역시 그 사실을 끝까지 찬드라세카르에게 알리지 않았고, 이는 찬드라세카르를 분노하게 하였다.

학회 당일, 찬드라세카르는 찬드라세카르 한계를 강조하며 완벽한 발표를 해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에딩턴의 차례가 왔을 때, 정말 놀랍게도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 한계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위에서 한 번 더 말했듯 에딩턴은 부피가 무한히 작지만 질량만이 존재하는 물질’, 즉 블랙홀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했고, 시리우스 A와 같은 찬드라세카르 한계이상의 별의 최후 역시 백색왜성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찬드라세카르의 수학적 증명을 상대론과 양자역학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은 수식이라며 비판하기까지 했다. 이런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찬드라세카르는 경악했다. 에딩턴의 방식은 그의 눈에는 완벽하게 틀려보였지만, 에딩턴에게는 굉장한 명성이 있었고,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양자역학이나 상대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시 찬드라세카르의 주장은 묻힐 위기에 있었다.

찬드라세카르는 다음 날 바로 친구인 물리학자 레온 로젠펠트에게 에딩턴이 옳은 것인지 물어보았고, 로젠펠트는 양자역학의 대가인 닐스 보어와 이를 확인해보았다. 정말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찬드라세카르가 옳았음을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들과 연이 있던 천문학자들도 점차 에딩턴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에딩턴의 전적과 명성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서 찬드라세카르를 옹호하려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블랙홀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에딩턴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1939년 찬드라세카르는 에딩턴과의 논쟁에 지쳐 항성의 최후와 백색왜성에 대한 연구를 수십 년 동안 그만두었다.

이후 찬드라세카르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하버드 대학,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직을 임했으며, 50여 명의 대학원생의 박사 과정 연구를 도왔다. 또한 백색왜성 이외에도 항성 대기 복사와 태양표면 대류, 그리고 블랙홀 이론을 연구했다. 1953년에 미국의 시민권을 얻었으며, 1983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찬드라세카르 한계를 알아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581일 사망하였다.

찬드라세카르 한계는 백색왜성의 한계를 계산한 것이지만, 나는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찬드라세카르 한계 이상의 질량을 가진 별의 최후의 존재를 예언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둘에 대한 연구를 찬드라세카르 한계에 대한 연구가 양자역학과 함께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하나의 분야를 열어냈다는 것이 바로 이 발견의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찬드라세카르가 대단한 사람이면서 굉장히 불운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에딩턴 덕분에 많은 도움과 영감을 얻었겠지만, 그는 에딩턴의 신념과 영향력, 그리고 높은 명성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계속 무시당했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이라 그랬겠지만, 수학적인 근거가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한 것은 에딩턴의 탓이 큰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그의 이론을 인정하고 노벨상을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 <블랙홀과 시간여행> -  S. 

- <
찬드라세카르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 - 정완상


- 
위키백과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 
위키백과 아서 스탠리 에딩턴


- 
위키백과 켈빈-헬름홀츠 기작


- 
위키백과 축퇴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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