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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서울대 기숙사 재건의 필요성

서울대는 혁신을 원한다면 기숙사부터 지어라

혁신을 원한다면 기숙사부터 지어라. - 대학신문 기고 2024.03.26, 아직 업로드되지 않음

 

요즘 세간에는 흉흉한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닌다. 편가르기 정치 뉴스가 잠시 쉴 때면 우리나라의 미래 경제에 대한 비관이 쏟아져나온다. 전 세계 유망 기술 44개 중 우리나라가 선두에 있는 건 하나도 없다던가, 미국이 모든 생산을 자국 내로 옮긴다던가, 중국의 배터리가 한국을 앞선다던가,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에 미국 InTel이 끼어들고 TSMC의 일본 공장이 순식간에 지어져서 삼성이 위태롭다는 등의 이야기가 매일 경제 뉴스를 장식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위태롭다고 한다. 경제란 무엇일까.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하나의 시장에서 투자 경쟁을 통해 상대를 압도하는 수익을 올리는 기업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두 기업 모두 상당한 혁신을 필요로 한다.

그래, 우리나라의 혁신은 어디에 있는가. 역대 가장 큰 재활용 로켓과 3D 프린팅으로 양산된 로켓이 우주를 날려고 하고, 핵융합 발전이 드디어 순이익을 내기 시작하며, AI가 글과 그림, 코딩을 넘어 말끔한 영상까지 만들어주는 기술 혁신이 나타날 때, 우리나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겉으로 보면 추격하기에 바쁜, 자신감도 없는 열등생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혁신은 어디에 있는가. 혁신은 대학에 있다. 미국에서 제일가는 실리콘밸리에 혁신을 공급한 곳은 Stanford 대학, 그리고 UC(캘리포니아 주립대) Berkeley 대학이었다. 이 두 대학 근처에 아주 많은 공터와 Garage 문화(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전자공학을 바탕으로 차고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수많은 IT 거대기업들과 실리콘밸리라는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다.

MITHarvard가 있는 Route 128(비록 실리콘밸리에 밀려 쇠퇴했지만) 유명한 첨단산업단지이다. 인도의 수많은 혁신은 인도 전역에 있는 IIT(인도공과대학)가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Tel Aviv 대학 역시 상당한 교내 창업을 통해 그 주변을 스타트업의 온상으로 만들어냈다. 중국의 수많은 혁신 역시 대학과 기업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가 만들었다.

, 대학을 빼놓으면 혁신은 일어나기 어렵다. 대학은 갓 학문을 배운 청년의 도전과 시행착오, 경험을 쌓아주는 강력한 반응기이자, 국가의 혁신을 지탱하는 기반 시설이다.

 

서울대는 어떤가.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업이 많이 이뤄져 온 학교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는 82위이다. 경제 규모 10(이제 13)의 나라, 세계에서 창업하기 쉬운 도시 10위에 있는 것치고는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연 1.4%로 낮은 이유가 과연 모두 원자재와 패권 전쟁 때문일까.

대학이 혁신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가, 라는 것은 대학이 얼마나 학생에게 도전을 유도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Garage 문화, IITInnovation Center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 대학과 주변 환경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을 유도한다.

하지만 서울대는 어떤가. 다른 대학은 또 어떤가. 필자는 여기서 일단 서울대에 집중하겠지만, 같은 내용은 그 외의 수많은 대학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그리고 수도권 대학들은 혁신을 별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의 혁신을 좀먹는 원인은 수십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건 어렵다는 열등감, 나보다 잘난 학우를 보고 잃어버린 자신감, 취업 준비부터 하라는 주입된 현실 감각과 부모님 및 재정의 압박, 평균 학점을 최대한 높게 받고자 한계 효용 체감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분위기, 심지어는 국가적인 혁신 부족에 의한 흉흉한 경제 자체가 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제목에서부터 그 원인으로 기숙사를 콕 집어 이야기했다. 실제로 서울대의 학부생 기숙사 수준은 서울대의 혁신을 낮추는 거대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원인보다도 대학, 그리고 대학교를 관찰하는 여러분이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원인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대학이 얼마나 학생에게 도전을 유도하는가,’ 대학이 학생에게 도전을 유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3D프린터나 전자부품, 아니면 실험실 등)의 접근성, 교수와 대학원생 등 선배 연구자들의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에게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이다.

학생에게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 여기서 여유란 일반 학교생활을 하고 나서 남는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의 여분을 말한다. 알다시피 셋은 서로 교환할 수 있는데, 시간과 체력을 써서 돈을 얻을 수도 있고(아르바이트나 과외), 돈을 써서 체력과 시간을 얻을 수도 있다(택시나 자취 등).

 

이런 시각에서 서울대의 대학생은 Stanford, IIT 대학생보다 여유가 없다. 그것도 정말 심하게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서울대의 대학생은 기본적으로 출퇴근에 편도 1시간~1.5시간, 즉 하루 2~3시간이 소모된다. 심지어 등교는 산길이고, 버스는 가득 차서 가니 그 대기시간까지 상당히 소모된다. 그 모든 순간에 체력이 함께 소모된다. 그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취를 하면 돈이 소모된다.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면 시간과 체력이 다시 엄청나게 소모된다.

서울대는 학비가 저렴하더라도 학교에 다니기 위한 비용이 이미 너무 크다. 그럼 학비가 저렴하지도 않은 다른 학교들은 어떨까 싶다.

그래, 바로 그 문제를 위해 기숙사가 있는 것이다. 대학이 관리하며 전세금도 작아 자취방보다 저렴하게 운영되는 기숙사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대학에서도 가까워 다니기 쉽고, 체력과 시간을 아끼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숙사가 필요하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숙사가 필요하다.

기사(사진 클릭)에서 공개한, 보수공사의 부재로 무너진 서울대 기숙사의 천장이다. 심지어 이건 구관 기숙사 중에서 가장 좋은 건물로 알려진 919동이다. '마구관'은 상태가 더 심하다.

놀랍게도 서울대에는 기숙사가 있다. 그리고 그 수준은 정말 참혹하다. 당장 학부생이 쓸 수 있는 구관 기숙사 921-926동은 적어도 1970년도에 지어진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바닥난방이 없는 라디에이터식 난방에 창문은 열리거나 닫히거나 둘 중 하나고, 씻으려면 금 간 세면대와 녹슨 하수구가 있는 공동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 물론 벌레도 가지각색으로 나온다. 이런 악명 때문에 구관 기숙사 921-926동은 짐승이나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 마구관이라고 불린다. 연세대나 고려대 등 다른 대학이라고 상태가 아주 괜찮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관악학생생활관에서 게시한 입주 가능 조건 중 하나. 서울대를 1시간 20분 내로 올 수 있는 지역에 가족 중 거주자가 있다면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같은 식의 조건은 다른 해외 대학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Stanford가 학부생의 Housing에 연에 2000억 이상 투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럼 다른 기숙사는 얼마나 있는가? 서울대의 기숙사는 애초부터 상당히 부족하다. 적어도 서울대를 1시간 20분 내로 올 수 있는 지역에 부모나 본인 중 한 명이라도 거주하고 있다면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그것도 신입생 1년이 지나고 나면 더 심한 경쟁이 일어나, 부모님이 먼 지방에 계시면서 성적이 매우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기숙사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LnL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다지만, 기숙사 자체의 공급이 제한된 이상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LnL은 기존의 건물을 이용하고, 결국 어느 기숙사의 인원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

그럼 기숙사를 늘리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서울대 주변의 토지 소유 등 문제 때문에 그 주변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은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5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허물고 규모를 키워 다시 지을 계획은 없느냐 묻는다면, 금방 흐지부지될 공약 정도의 수준에 그쳐왔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공시된 일은 전혀 없다.

 

서울대를 다닌다는 것은, 말을 바꾸자면 평균 4시간 정도의 대학 생활을 위해 평균 왕복 4시간 이상을 서서 가는 통학을 매일 감수하겠다는 뜻이 된다. 필자처럼 수도권 먼 곳에 사는 재학생이 기숙사를 잡지 못했다면 이렇게 된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취방을 얻는 경우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 과외 등을 해야 하며, 결국 시간과 체력은 비슷하게 소모된다. 같은 일은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아 집값과 물가 등이 크게 오른 수도권의 많은 대학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Stanford, UC Berkeley, MIT, IITTel Aviv 등의 외국 대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거리나 성적 등에 큰 제한 없이 우선 기숙사를 제공한다. 심지어는 기숙사로 부족하다면 매우 가까운 곳에 대학이 운영하는 외부 기숙사인 School Housing을 제공한다. 즉, 해외 대학들은 애초부터 학생들이 근처에 머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 한다. Stanford는 20년 간 학생 기숙사를 위해 약 5조 원을 투자했다. IIT는 애초에 모두 전원 기숙사 학교이다.

따라서 현재 서울대 학생들, 한국의 수도권 대학생들은 이렇게 해외에서 혁신을 유도하는 대학의 학생들에 비해 여유가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도전은 감소하고, 시행착오에서 오는 지식의 창조는 감소하며, 혁신의 생산이 크게 줄어든다. 대학원생 때 기숙사를 쓸 수 있다고 해서, 학부 때 얻을 수 있었을 경험이라는 격차가 바로 메꿔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근처에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것은 혁신을 위한 대학의 의무이다. 서울대는 지금 대학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 정말 그 중요성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변화인 만큼 굳이 큰돈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걸까.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서울대는 도서관 꼭대기에 예쁜 호수를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할 돈은 있고, 매일같이 새로운 건물을 지을 돈은 있다. 하지만 학생회관의 묵은 때를 지울 돈이나, 기숙사를 다시 지어서 인원을 늘릴 돈은 없는 것 같다고.

대학에 기숙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그 바보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의 혁신이 감소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들, 특히 서울대만큼은 기숙사가 제대로 갖춰진다면 대학 내에서 나타나는 혁신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더 많은 기술 경쟁력 성장으로, 다시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으로 나타날 것이다.

서울대가 정말 대단한 성과를 내신 교수님들을 모셔오고 있고, 스타트업과 연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의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투자할 곳이라면, 그곳은 기숙사이다. 서울대는 혁신을 원한다면 기숙사부터 지어라.

 

 

이 뒤는 여담이다. 아마 필자에게 KAIST의 예시를 들면서, 기숙사가 교내에 잘 있는데도 왜 혁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KAIST가 저렇게 좋은 환경을 갖추고도, 왜 창업 수가 서울대보다 더 적게 나타났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최근 데이터를 보면 KAIST의 스타트업은 서울대보다 수도 더 많고 성장률도 더 높다. 아마 그 이유가 기숙사라는 환경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학생이 도전하기 좋은 환경을 KAIST는 분명하게 만들어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KAIST 하나만으로 우리나라의 기술 혁신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서울대와 수도권 대학에는 이대로 두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도 큰 인재들이 있다. 국가와 대학은 이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숙사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학생들이 거주와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기숙사를 제대로 설계하여 지어야 한다.

 

필자는 기숙사를 다시 짓자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마구관을 한 번이라도 보고 경악하거나 어찌저찌 적응하여 다니는 학우들이었다. 하지만 필자만큼 그 필요성을 느낀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기술 혁신에 상당히 관심이 많고, 국제 정세에도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마구관에서 기숙사 생활도 해봤고, 자취도 해봤으며, 왕복 3시간 반의 통학도 해보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숙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다. 서울대만큼 기숙사에 관심이 없는 대학은 없었다. 가까이 사는 사람을 기숙사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는 국외에서 한 번도 못 봤다. 대학이 이 거대한 문제를 빨리 깨닫고 해결해주길 바란다.

예산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뭘 해도 방법은 있다. 1000억 원이 들어간 그 멋진 중앙도서관 관정관은 어떻게 지었는가. 모두 완벽한 계획을 세운 뒤 기부를 받지 않았던가. 기숙사의 중요성을 학교가 잘 설명한다면, 조국의 교육과 혁신을 위해 투자해 줄 사람이 과연 없으리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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